신인류의 직장인이라 불리는 BC카드 이동수 님을 만났습니다. 처음 육아 휴직을 쓴 건 2017년, 현재는 두 번째 육아휴직을 쓰고 가족과 함께 제주도에서 한 달 살기를 하며 버킷리스트를 실현하고 있습니다. 금융회사 직원을 생각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와는 사뭇 다릅니다. 머리를 기르고, 본부장님과도 자연스럽게 하이파이브를 하며 아침인사를 나누죠. 회사 모니터에는 ‘언젠간 잘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는 문구가 붙어 있습니다. 그 모습이 담긴 <아무튼 출근> 영상은 유튜브 조회수 171만회를 기록했습니다. 많은 직장인이 꿈꾸는 삶을 실행에 옮긴 비결은 무엇일까요? 지난 7월 광교에서 회사 생활과 삶에 대한 그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선택 앞에서 20년 뒤 내가 어떻게 답할 것 같은지 떠올려보라고 하고 싶어요.”
카드사 상품개발 및 마케팅 담당 이동수
Q. 승진 대신 육아휴직을 선택했습니다.
쉽지 않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지금처럼 남자가 육아휴직을 많이 쓰지 않았거든요. 승진을 앞두고 있던 때라 회사에서는 1년만 늦게 가라는 제안도 있었어요. 그런데 미루는 건 선택지가 아니었어요. 그 시간은 다시 오지 않잖아요. 먼 훗날 떠올렸을 때 2017년에 승진했다는 사실과 가족과 함께 보낸 시간 중 어떤 게 더 기억에 남을까 생각했죠. 제게는 기준이 명확했어요.
Q. 실현해보니 어떤가요?
지금 육아휴직 5개월 차인데요. 밀도 있게 행복한 시간인 것 같아요. 아내도 저도 꿈꾸던 버킷리스트를 실현하는 중이에요. 유튜브를 만드는 작업실을 구했고 여기에 갖고 싶은 소품도 채워넣었어요. 아내는 관심 있던 요가 강사 자격증과 와인 공부를 하고 있어요. 이제 곧 가족들과 제주도 한달 살기를 떠나요. 이 시간이 앞으로도 평생 기억나지 않을까요?
아내와 매일 이런 이야기를 나눠요. 너무 행복하고 감사한 날들이라고. 물론 육아와 병행하기 때문에 시간을 촘촘히 써야하고, 일상 속의 힘든 부분은 당연하다고 생각해요.
스스로에게 자주 질문을 던진다는 이동수 님 ⓒ폴인, 최지훈
Q. 많은 이들이 꿈꾸지만 행동으로 옮기지는 못합니다. 차이가 뭘까요?
조금 닭살스러운 이야기일 수도 있는데요, 저는 어떤 일이든 스스로 결정해서 내 삶을 온전히 살아야겠다는 기준이 있어요. 눈치를 보는 건 다른 사람에게 중요한 거죠.
어릴 때부터 자립심이 있는 편이였어요. 아르바이트로 용돈을 벌어쓰고, 생활비 관리도 직접 했죠. 버스가 한 시간에 한 대 다니는 외진 곳에 살았는데, 유치원 때부터 그 길을 혼자 다녔어요. 고등학생 때 확신이 들었죠. 나 혼자 스스로 살 수 있겠다.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집을 떠나 독립했어요. 20년 전이니까 시급이 1800원이었는데, 아르바이트로 월급을 200만원 넘게 벌었어요. 배달, 호프집, 물류 등 안 한 게 없었죠.
Q. 회사원 이동수는 어떤가요?
처음 입사했을 때 회사 생활에 잡아먹히면 안되겠다고 생각했어요. ‘언젠가 잘리고, 회사는 망하고, 우리는 죽는다’는 문구를 PC에 붙여뒀죠. 제가 이 말을 스스로 생각해낸 게 맞는지 구글에서 찾아봤는데 없더라고요. 회사 일도 재밌고 중요하지만 더 큰 관점에서보면 이것 역시 인생의 일부잖아요.
노트북 위에 붙어있는 문구 ⓒ폴인, 최지훈
물론 열심히 일한 시간도 많았어요. 데이터를 기다리면서 밤을 샌 적도 있고, 가장 늦게 퇴근하고 가장 일찍 출근하면서 일한 적도 있죠. 언제나 워라밸을 1순위로 챙긴 건 아니예요. 하지만 분명했던 건 제 삶을 위해서 일했어요. 회사가 아니라 나를 위해 일했기 때문에 일도 열심히 할 수 있었던 것 같아요.
Q. 자유롭게 회사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입니다.
자기에게 맞는 게 무엇인지 스스로 질문하고, 또 그런 환경을 만들 수 있도록 노력하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저는 꼼꼼함이 부족한 대신 아이디어가 많은 편이에요. 회사에서도 제가 그런 사람인 걸 알고 잘 맞는 업무를 맡을 수 있도록 포지셔닝 했죠.
처음에는 제품 빌링 쪽에서 오탈자 검수하는 업무를 담당했어요. 꼼꼼해야 잘 할 수 있는 일이어서 저에게 잘 맞지 않았어요. 2년 정도 담당하다가 여행팀으로 옮겼어요. 보통 여행 전공자나 경력직만 가는 곳이서 옮기는 게 쉽지 않았는데 팀장님, 본부장님, 인사팀을 만나 긴 시간 설득했어요. 다행히 옮기고 나서 그 전보다 즐겁게 일했던 것 같아요.
Q. 많은 직장인이 눈치를 봅니다. 해주고 싶은 조언이 있을까요?
선택 앞에서 '20년 뒤 내가 어떻게 답할 것 같은지' 떠올려보라고 하고 싶어요.
미래의 내가 생각해도 잘했다고 할 선택이면 해도 될 것 같아요. 그런데 '아 그때 도전해볼 걸…'이라는 아쉬움이나 후회가 들 것 같다면 작게라도 시도해봤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틀에 박힌 교육을 받고 자랐잖아요. 그런데 그 속에서도 누군가는 틀을 깨요. 그러니 기회를 만들어서 시도해보면 되지 않을까 생각해요. 지금은 당연하다고 믿는 것들이 언젠가는 아니게 되니까요.
육아휴직 후 네덜란드에서 5개월 된 아이를 데리고 자동차 여행을 다닌 적이 있어요. 그때 신문에 에세이를 연재했는데, 악플이 많이 달렸어요. ‘부모가 저러면 안 된다’, ‘자기 좋으려고 하는거다’ 등의 반응이었죠. 그런데 제가 행복하려고 자동차 여행을 한 게 맞아요. 제 행복이 아이에게 전염될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제 삶에서 많은 이들이 하지 않는 선택을 한 순간이 많지만, 후회는 없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