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윤환 카카오TV 오리지널스튜디오 제작총괄은 2002년에 MBC 예능본부에 입사해 '무릎팍도사' '뜨거운 형제들' '아이돌육상대회' 등 인기 프로그램을 연출했습니다. 이후 JTBC로 자리를 옮겨 음악 프로그램인 '비긴 어게인'을 기획하고 시즌 1의 메인 연출을 맡았죠. 그 후 카카오TV로 자리를 옮겨 제작총괄을 맡고 있죠. 지상파, 종편, 뉴미디어까지 '변화'라는 키워드를 이보다 더 잘 말해줄 분이 없겠다 싶었습니다. 실제로 만난 오윤환 총괄은 확신을 갖고 말하는 분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확신하는 사람들을 경계해야 한다고 했죠. 변화의 최전선에 서 있는 카카오TV와 그의 이야기를 들어봤습니다.
" 저는 성공의 법칙 이런 걸 안 믿는 편이에요. '무조건 된다'라는 말 같은 거요. 대신에 더욱더 본질을 지키려 노력하죠."
오윤환 카카오TV 제작총괄
Q. 출범한 지 1년 6개월이 지났습니다. 그간의 성과가 궁금합니다.
카카오엔터테인먼트는 2020년 9월 카카오TV 오리지널을 론칭해 2021년 12월 말까지 74개 타이틀의 오리지널 콘텐츠를 만들었어요. 누적 조회 수는 15억 뷰, 누적 시청자 수는 6000만명입니다. 최근 3개월간 월 평균 시청자 수는 780만 명이고요.
아직 론칭 시점이 얼마 되지 않아, 지금은 시청자가 카카오TV의 오리지널 IP를 폭넓게 경험할 수 있도록, 콘텐츠 공개 플랫폼을 확장하는 전략에 중점을 두고 있습니다.
Q. '카카오'이기에 가능한 형식이나 실험이 있다면 어떤 건가요?
김이나씨의 '톡이나 할까' 같은 경우엔 아예 화면 비율을 세로형으로 제작했어요. ‘톡’이라는 주제와도 맞고, 카카오톡을 이용하는 분들에게 익숙한 형태죠.
디지털이기 때문에 브랜드 노출 같은 심의 면에서는 좀 더 자유롭기도 해요. '개미는 오늘도 뚠뚠'처럼 주식을 소재로 한 프로그램은, 사실 지상파나 종편에선 불가능한 프로그램이요.
주식의 구체적 종목을 다루기 때문이죠. 이런 면에서 좀더 자유롭다는 이점도 있습니다. 하지만 전 연령층이 접근할 수 있는 플랫폼이란 점을 고려하여, 내부에 별도의 자체 심의팀을 통해 의견을 수렴하는 절차를 거칩니다.
카카오톡이라는 플랫폼 특성을 잘 활용한 카카오TV의 콘텐츠 '톡이나 할까' ⓒ카카오TV
Q. 기발한 포맷과 주제를 다룬 프로그램이 많은데, 카카오TV만의 기획 비결이 궁금합니다.
가장 중요한 건, 'TV와는 달라야 한다'는 거예요. 방송에도 흐름이 있어서, 유행인 소재가 있어요. 하지만 PD들이 기획안을 가져왔을 때 공통적으로 제가 하는 얘기는, "TV에서 많이 하는 걸 우리도 할 필요가 있나?"란 거예요.
그럼에도 변함없이 중요한 건 '재미'예요. 재미는 기본이죠. 요즘 시청 패턴은 몰입의 시간이 무척 짧기 때문에, 재미가 없으면 일단 도태돼요. 방향성은 그다음이죠. 카카오TV는 미드폼(20분 내외) 콘텐츠이기 때문에 기획에 좀 더 유리한 면이 있어요. 분량을 채워야 한단 부담 없이 아이디어를 실현할 수 있거든요.
Q. 미드폼 콘텐츠에 대한 지금까지의 시청자 반응은 어떤가요?
아무래도 요즘 콘텐츠는 시청 호흡이 짧습니다. 하지만 무조건 짧게 만들진 않죠. '체인지 데이즈'의 경우엔 카카오TV의 콘텐츠 중 긴 편이에요. 내러티브가 있는 프로그램은 몰입도가 높기 때문에 러닝타임을 길게 두는 편이죠.
사실은 판단이 무척 어렵습니다. 이렇게 다변화된 시청 패턴에선 어떤 법칙이나 솔루션이 있는 게 아니라서요.제작총괄로 '판단'을 내리는 입장이지만 건별마다, 프로그램마다 각기 다른 결정을 내려야 합니다.
Q. 그렇다면 결정에 가장 영향을 주는 요소는 뭔가요?
PD라는 직업 자체가 결국 ‘판단’하는 직업이라고 생각해요. 편집할 때도 그렇고 현장에서도 마찬가지죠. 사실 어떤 프로그램은 무조건 잘될 거라고 생각하고 들어갔는데 안 되는 경우도 있고, 별 기대 없이 시작했는데 잘된 경우도 있어요. 그래서 저는 성공의 법칙 이런 걸 안 믿는 편이에요. '무조건 된다'라는 말 같은 거요. 대신에 더욱더 본질을 지키려 노력하죠. '우리가 새로운 재미를 주고 있는가' 하는 부분요.
Q. 가장 뿌듯했던 순간이 있다면요?
2021년 백상예술대상 예능 작품상 후보에 '개미는 뚠뚠'이 올랐어요. 카카오TV 오리지널스튜디오를 시작하며, 3년 내에 우리가 만든 콘텐츠가 백상예술대상 후보로 오르는 걸 목표로 했거든요. 그간 시행착오를 겪긴 했지만, 방향은 맞게 가고 있구나 싶더라고요. 개인적으로 뿌듯했습니다.
"저를 여전히 PD라 생각해요. 다만 하는 일이 조금 다를 뿐이죠." ⓒ송승훈
Q. 제작 현장에서 일하다 이제는 관리 업무를 맡고 있는데요. 후배들에게 어떤 조언을 하나요?
저는 축구선수에서 축구 감독이 됐을 뿐이라고 생각해요. 그래도 '축구인'인 건 맞잖아요.저를 여전히 PD라 생각해요.다만 하는 일이 조금 다를 뿐이죠. 세부적인 연출 면에서는 후배들의 의견을 전적으로 존중해요.
다만 저는 솔직하게 피드백하려 노력해요. 영화 '머니볼'에 이런 대사가 나와요. "가슴에 세 방 쏠래, 머리에 한 방 쏠래?" 선배로서 좋은 척, 착한 척하는 것보다 정확하고 심플하게 제가 원하는 바를 말해주는 게 낫다고 봐요.
Q. 콘텐츠 업계에 20년 넘게 종사하며 번아웃을 얻지 않기란 쉽지 않을 듯한데요. 일과 삶 사이 균형을 어떻게 맞추는지 궁금합니다.
PD의 일 자체가 사실 워라밸이 무너질 수밖에 없는 일이에요. 40분짜리를 편집하는 데 일주일이 걸리거든요. PD들이라면 다 알고 있을 거예요. 밤을 새우고 한 시간이라도 고치면 더 좋아진다는 걸요.그러다 보면 번아웃이 오는데요.
제 경우엔 3~4년차에 왔어요. 이렇게 집에도 못 가고 잠도 못 자고 친구들도 못 만나고 일만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그렇게 고민할 즈음에 마약처럼 제가 만든 콘텐츠에 반응이 오더라고요. 그 맛으로 버텼어요.
Q. 올해에도 많은 콘텐츠를 준비하고 계실 것 같습니다. 2022년 주력으로 소개하고 싶은 프로그램이 있다면 뭘까요?
시청자들과 직접 소통하고, 시청자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보여드리게 될 것 같아요.수동적으로 시청하는 게 아니라, 플랫폼을 이용해 능동적으로 시청자 참여를 유도하는 장치가 들어갈 것 같고요.
유재석씨가 참여한 '플레이유'라는 프로그램인데요, 유재석씨를 게임 캐릭터로 삼은 실시간 인터랙티브 예능이에요. 실시간 라이브를 통해 접속한 시청자들이 '플레이어'로 전략과 실행에 참여해 유재석이라는 캐릭터를 움직여 미션을 완수해야 하죠.
Q. 개인적·커리어적 목표가 궁금합니다.
개인적 목표와 커리어적 목표가 비슷할 것 같아요. 일단 거시적으론 카카오TV가 사람들이 많이 보는, 성공적인 플랫폼으로 자리잡을 수 있도록 만드는 게 목표죠. '재밌는 게 많이 있는 곳'이라는 브랜드 포지셔닝을 잘해냈으면 좋겠고요.
또 제가 속한 카카오TV 오리지널스튜디오엔 많은 PD와 작가, 제작진들이 있어요. 저희 조직이 정말 어디에 내놔도 본질과 트렌드 둘 다를 놓치지 않는 크리에이티브 집단이란 얘기를 듣고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