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구밭은 ‘설거지 워싱바’로 유명한 고체 비누 제작회사입니다. ‘사회적 기업은 영세하다’는 편견과 달리, 해마다 100억원 이상의 매출을 내고 있어요. 영업이익만 20% 이상이라 투자 러브콜을 보내는 VC도 많습니다. 최근에도 100억원 규모 딜(deal) 이야기가 오갔는데요. 노순호 대표는 끝내 고사합니다. 노 대표가 말하는 동구밭 성장 비결은 무엇일까요?
"B2B에서는 스토리텔링이 통하지 않아요.
실력만으로 정면승부해야죠."
동구밭 대표 노순호
‘관계 맺기’에 초점 된 사업 방향
저는 ‘동구밭’ 대표 노순호입니다. 고체 비누 등 친환경 제품을 만들고 있어요. 저희의 첫 출발은 농사 프로젝트였는데요. 해결해야 할 사회 문제를 찾다 성인 발달장애인에게 관심이 생겼습니다. 곧장 도시농부 협동조합을 만들고 비장애인과 발달장애인이 함께 농사를 짓기로 했죠. 히지만 6개월이 지난 뒤 깨달았습니다. 이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지속가능하지 않았다’는 것을요.
6개월 만에 끝날 뻔했던 프로젝트가 지속된 원동력은 무엇이었을까요? 바로 ‘친구가 되는 일’입니다. 농사가 아니라, 비장애인 친구를 사귀고 시간을 보내며 사회성을 키워나가는 ‘경험’이 필요했던 것을 깨달았죠.
실력은 스토리텔링보다 힘이 세다
농사는 과감히 접었습니다. 대신 제조업으로 사업 모델을 바꿨어요. 안정적인 고정 매출을 내는 게 최우선 과제였거든요. 그렇게 2017년 비누 사업에 뛰어들었어요. 대기업이 진출하지 않은 시장이라 1등 할 승산이 있어 보였죠. 대신 저희는 철저하게 B2B를 공략하기로 했어요. 아모레퍼시픽이나 신세계, 애경 등 대기업 유통회사를 고객사로 두고, OEM(주문자 상표 부착 생산)·ODM(제조업자 개발 생산)으로 제품을 납품했습니다.
장애인 이야기는 절대 꺼내지 않았습니다. 감정에 호소해 돈 벌고 싶지 않았거든요. 하나의 기업으로, 제품으로 평가받고 인정받는 게 가장 중요했어요. 그리고 B2B에서는 스토리텔링이 통하지 않습니다(웃음).
동구밭에서는 발달장애인 38명이 비누 제조 과정에 직접 참여해 상품을 생산한다. ⓒ 동구밭
하지만 비누 시장은 한계가 명확했습니다. 규모가 너무 작아 매출 10억원을 넘기는 것도 힘들었죠. 이대론 안 되겠다 싶었어요. ‘비누가 화장실을 벗어나야 한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고체 타입 설거지 워싱바도 만들고, 고체 샴푸·린스로 상품 라인업을 확장했는데요. 2017년, 기회가 찾아왔죠. 액상 세제를 많이 쓰면 체내에 화학물질이 쌓인다는 다큐멘터리가 방영된 뒤 고체 세제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거든요.
자연스럽게 고체 세제를 찾는 사람들이 많아졌어요. 강남 맘카페에서 저희 설거지 워싱바를 공동구매하는 등 젊은 엄마들 사이에 입소문이 퍼졌습니다. 사회적으로 친환경 트렌드가 보편화한 것도 한몫했고요. 덕분에 설거지 워싱바는 제품 출시 석 달 만에 4만 개가 팔렸어요.
고체로 만든 샴푸바. ⓒ 동구밭
브랜드 ‘동구밭’을 지켜낸 이유
B2B와 B2C가 동시에 성장하자 2가지 문제에 부딪혔어요. 하나는 생산량이었습니다. 생산량이 부족하면 B2C 제품은 몇 달 동안 품절 상태로 두고, B2B 제품 생산에 몰입했죠. 그러다 보니 충성도가 높은 소비자들이 항의하기 시작했어요. 다른 하나는 B2B 고객과의 관계였어요. 자체 브랜드 말고 OEM으로 납품해달라는 고객이 많았죠.
하지만 저희는 자체 브랜드를 계속 키워나가기로 했어요. 자체 브랜드가 더 확실한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판단했거든요. 다만, 기존에 신의를 잃지 않기 위해 B2B 제품 먼저 납품했습니다. 동시에 자체 브랜드 제품을 올리브영이나 이마트 등 대형 유통사에도 입점시켰어요. 코로나19로 친환경 제품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전보다 판매량도 늘었어요. 자체 브랜드 매출이 OEM 비중을 뛰어넘었을 정도니까요.